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난 구달은 호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식물학계에서 굵직한 연구 결과들을 발표하며 왕성한 업적을 쌓았고, 특히 식물군생에 수치분석 기법을 도입한 생태학 분야의 대가였다. 70년간 연구 활동을 이어온 그는 102세까지 에디스코완대학의 명예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술지 편집장을 역임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자로 활약했다.
어느 날 고령인 그가 1시간30분 거리의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상황을 우려한 대학 측에서 퇴임을 권고했다. 대중교통을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등 무리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에 구달박사는 “고령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항의했고, 결국 대학 측은 집에서 가까운 새 사무실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퇴임 권고를 철회했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게 되자, 구달 박사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상황을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며 연구 활동을 지속하던 그도 결국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운전과 취미 삼아 하던 연극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자 구달박사는 의기소침해졌고, 삶이 더이상 행복하지 않은 시기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초고령에도 활동을 잃지 않는 노인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낙상 사고를 겪는 후 남의 도움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그렇게 활동적이던 사람에게 남의 손에 의탁해야 하는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104번째 생일이던 2018년 4월 4일 호주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 이 나이까지 살다니 정말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죽고 싶다. 죽는다는 게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다. 진짜 슬픈 것은 죽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구달박사는 20년 동안 호주에서의 안락사 합법화를 위해 힘썼는데, 관련 단체인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호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된 주는 빅토리아주 단 한곳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암과 같은 말기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2018년 4월 30일 구달박사는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로 여행을 가서 죽겠다고 선언한다.
인터넷 모금으로 스위스행 편도 항공료와 여행 경비 1만 7000호주달러가 겉혔다. 구달 박사는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동료과 함께 생애 마지막 여행을 하게 되었다. 죽기 전 그는 프랑스에서 친지들을 만나 함께 동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달박사는 자신이 안락사하기로 심한 것을 대중이 이해하기 바란다며 말했다. “빨리 끝날수록 좋을 겁니다. 나와 같은 노인들이 죽을 권리까지 인정될 때 비로소 온전한 시민권을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죽겠다는 선택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누가 중간에 끼어들어 이를 방해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구달 박사는 생애 마지막 편지를 손보며 남은 가족들과 오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구달 박사와 스위스로 동행을 한 엑시트 인터내셔널의 동료 캐럴 오닐은 ”박사님이 딱히 우울하거나 비참하다고 느끼는 건 아니에요. 다만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삶의 작은 광채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을 뿐이죠.“ 라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프랑스에서 친지들을 방문한 후 스위스 리스탈로 향했다.그곳에서 의사들과 안락사 절차를 논의했고, 가지회견에서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2018년 5월 10일 그는 평소 즐겨 듣던 베토벤의 교향곡 을 들으며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기 손으로 넴부탈이 주입되는 수위치를 누른 뒤 죽음을 맞이했다.